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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운 아나운서.... 이금희(李錦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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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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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운 아나운서....

글 : 이금희(李錦姬) l 방송인, 전 아나운서

지금도 그렇지만 대학 시절 나는 무척이나 촌스러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할 때가 되어서도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대학생들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화장도 할 줄 몰랐고, 머리도 손질할 줄 몰랐으며,
옷도 청바지 외에는 별로 없었다.

그러던 내가 취직을 했는데,
그곳은 유행의 최첨단(最尖端)을 걷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방송국이었다.
시골 사람 서울 구경이 그랬을까?
신입 사원 연수(硏修) 때부터 나는 어리벙벙하기만 했다.
신입 사원들의 연수를 위해 단체 합숙을 하는 첫날,
순진하게도 나는 안내문에 써 있는 대로
세면 도구와 속옷 몇 벌만 달랑 챙겨 갔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동기 아나운서들은 여벌의 옷가지들은 물론,
드라이어와 화장 도구 일체를 챙겨 와서는 갖가지
화장품을 풀어 놓고 아침마다 정성껏 얼굴을 두드리는데,
제대로 된 화장이 그런 것인 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 친구들에 대한 나의 열등감은
아마도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화면에 모습을 비춰야 하는 직업이라서
아나운서에게는 화장, 머리 모양, 의상 등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쪽에는 도통 관심도 없었고
눈썰미도 없었던 나로서는 동기들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세련된 그들에 비해 촌스러운 나를
누가 눈여겨보기나 할까 하는 열등감과 함께.
어쩌면 프로그램에 나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걱정도 들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동료 아나운서들이 값비싸고 유명한 상표의 옷을 입으면
나는 남대문 시장이나 강남 고속 버스 터미널 지하로 가서
비슷한 의상을 사들였다.
화장품도 이것저것 사서 얼굴에 덕지덕지 발랐다.
눈썹도 더 진하게, 입술 색깔도 더 강렬하게…….
원래 잘 하는 화장일수록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법인데,
나는 무조건 진하게 그리고 발랐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딘지 내 색깔이 없어져 가는 것 같았다.
화면에 나온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어색하기만 했고,
옷도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불편했다.

그러면서 점차 깨닫게 된 것이 바로 '나다움'이었다.
아무리 그들을 의식하고 흉내낸다 하더라도 나는 결국 나이다.
나는 어떻게 해도 그들이 될 수 없다.
그들을 쫓아가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나다운 것조차 잃어버린게 된다.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당시에 내가 맡았던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신입 사원 시절 나는 어린이 동요 대회 프로그램과
고향 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을 맡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당시 그 프로그램의 당사자들은 나의 그 촌스러움,
즉 소박함을 높이 사서 나를 프로그램 진행자로 추천했다고 한다.
그런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모자란 부분도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장점이 될 수 있다.
촌스러움도 순수함으로 비추어질 수 있고
세련되지 못한 점이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기준과 잣대이다.
기준을 남에게 두고 그에 맞추려 하는 것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테스가 침대 하나를 마련해 놓고
그 침대보다 키 작은 사람은 몸을 잡아 늘이고,
침대보다 큰 사람은 다리를 자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스스로를 그런 침대에 맞춰 늘이고 줄이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노릇인가.
그보다는 내 체구에 맞지 않으면 침대를 바꾸는게 낫지 않을까.
나는 결국 나이니까 내가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제대로 봐 줄 리 없고,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